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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전진호] 메멘토 모리, '내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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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기간 (사업내용 개발 후 작업 예정)
등록일 2020-07-16 오전 9:38:36

메멘토 모리, '내 죽음을 기억하라'

 

 

 

전진호

편집국장 (복지TV / 웰페어뉴스)

 

 

 

세 발자국, 3분, 3미터… 이를 피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 이가 있다.

故 김주영 씨의 이야기다.

 

 

까맣게 변해버린 김주영씨의 집.

 

까맣게 변해버린 김주영 씨의 집.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타버린 잔해 사이로 뼈대만 앙상.

 

 

지난 10월 26일 새벽,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연립주택에서 살고 있던 김주영 씨는 화마를 미처 피하지 못해 숨을 거뒀다. 화재가 발생하자 침착하게 스틱을 입에 물고 119에 전화를 걸어 화재신고를 했고, 불은 곧 진화됐지만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불길 속에서 그렇게 타들어갔다. 혹시라도 불이나면 어쩌나 싶어 한 겨울에도 전열기 사용을 꺼렸다는 그이기에 더욱 서글프고 안타깝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립생활을 택했고,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미디어와 지역문제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그가, 34살의 꿈을 입에 문 붓끝으로 실어 채색해오던 그가 미처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지난 9월에는 허정석(근육장애 1급)씨가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사이 호흡기가 떨어져 사망했다. 그 역시 최중증장애인이었으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로 한 달 100여 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다고.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29일에는 보행이 불편한 뇌병변장애인 동생과 탈출하기 위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였던 박지우 (주의력결핍행동과잉장애, 발달장애) 양이 지난 7일 저 세상으로 떠났으며, 동생역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 가족은 3년 전 파주시에 무한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요구했으나 ‘위기가정이 아니다’는 이유로 탈락했고, 지난해에는 장애아동양육서비스를 신청했으나, 이 역시 파견인력 부족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생계를 위해 장애가 있는 자녀들을 집에 놔두고 돈벌이에 나서야 했을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지만 소득기준 최저생계비 170% 이하, 재산 8,500만 원 이하, 통장재산 300만 원 이하인 가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 가족은 아무런 사회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활동지원서비스조차 받지 못했던 건, 이를 위해 장애등급 재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비싼 검사료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설사 서비스를 받았다 하더라도 장애아동이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는 한 달에 60여 시간에 불과해 사실상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고 김주영 활동가와 고 박지우 학생

 

화재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故 김주영 활동가 (34, 뇌병변장애 1급) 와 故 박지우 학생 (13, 발달장애)

 

 

실질적인 사회서비스 안정망 구축만이 해답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으며 얼마 전 참가한 ‘장애인 탈시설 욕구조사’를 위해 만났던 분들이 떠올랐다. 장애인생활시설이나 그룹홈 등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욕구와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시설입소를 기다리는 부모님과의 만남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지우 양 가족과 같이 생계문제로 인해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가정서부터 발달장애 자녀에게만 하루 종일 매달려 있다 보니 나머지 자녀에게 문제가 생겨 이혼 위기에 내몰린 가정, 사회성 떨어지는 아이의 미래가 너무 막막해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다보면 사회성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결정했다는 가정…. 아이소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사연들이 줄을 이었다.

 

최근 벌어진 비극이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이들 앞에서, 현실적인 지원이 빨리 마련되지 않는다면 가정파탄의 기로에 서있는 이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을까. 입소 대기자 가족들의 주장대로 생활시설 입소가 유일한 해결책일까, ‘국가가 책임져야할 문제를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현실을 알기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정부는 몇 해 전부터 장애인복지 정책의 기조는 탈시설, 자립생활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고 선언했으며 이에 맞는 정책을 추진해나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너무 낮다. ‘큰 그림’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생활시설로의 입소를 은근 강요하는 사회구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라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예산과 형평성 등의 문제 때문에 지금은 어렵다’는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선순위에서 매번 밀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더 이상의 죽음은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냉기 서늘한 지하철 역사에서, 도로에서 찬바람 맞아가며 장애가 있는 이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투쟁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 이상 우선순위에 밀려 자신의 의지를 모두 상실하며 살아야 하거나, 죽을 수는 없다고 온 몸으로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처럼 우리 모두가 거리로 나서고, 투사가 될 수는 없다. 생각에 따라 이들의 방식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허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게 지지를 표현하고, 목소리 내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또 다른 죽음을 목격할 수밖에 없고, 반복될 것이라는 건 이미 수도 없이 경험했다.

 

차기 정부가 예산 논리에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우선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 나와 내 가족, 장애가 있는 모든 이들이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당당히 권리를 행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냉정한 판단과 실천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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