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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전진호] 장애등급 폐지, 발달장애인에게 득일까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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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0-07-16 오전 9:39:32

장애등급 폐지, 발달장애인에게 득일까 실일까

 

 

 

전진호

(월페어 뉴스/ 복지TV)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은 몸도, 마음도 바쁘다.

우리 아이가 환자도 아니건만, 여력이 닿는 대로 좋다는 치료실 찾아다닌다. 한동안은 달리기나 수영이 트렌드였는데 요즘은 원예나 악기연주 ‘치료’가 붐이다. 그렇게 한다고 달라지는 건 거의 없지만,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나아졌으면…. 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운지를 잘 알고 있기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쫓아다닐 수밖에 없다. 그렇지 못한 부모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기도 하고, 심한 경우 우울증이나 가족해체로까지 이어진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비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춰진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나중을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마음 때문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경해지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 이곳저곳 다녀보기도 하고, 수없는 반복훈련을 통해 조금이라도 개선된 모습을 보이면 뛸 듯 기뻐한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우리 아이가 장애등급 하향판정을 받는 것에 대해선 전전긍긍 해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 2011년부터 진행된 장애등급을 재심사 과정서 하향등급 판정을 받는 사례들이 크게 늘자 걱정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말 그대로라면, 우리 아이의 장애가 나아졌다는 결과이니 뛸 듯 기뻐해야 하겠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현실로 돌아오면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린다. 오히려 이로 인해 그동안 받고 있던 바우처나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못 받게 되면 어떻게 하나, 불안감이 밀려온다.

 

우리 아이의 장애가 개선(?) 됐다는 공식적인 ‘통보'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 아이를 전혀 반영할 수 없는 지능지수에 맞춰 등급을 매기는 부당함을 제쳐놓더라도, 모든 사회서비스가 장애등급과 연동돼 있어 ‘등급하락=바우처와 활동지원서비스, 심지어 (얼마 안 되는) 연금 등 장애와 관련한 모든 사회서비스에서 탈락하거나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등급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아이가 받아야 할 사회서비스는 변함없는데, 이를 기준으로 더 적게 주려고 하니 마찰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존 장애등급으로 인한 병폐들이 속출하자 많은 이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존의 장애등급 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소 돼지도 아니고, 사람을 의학적 기준에 맞춰 일렬로 세워놓은 뒤 끼워 넣겠다는 발상자체부터가 차별적이기도 하지만, 발달의 정도와 가족의 삶,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등을 고려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옳은 주장이긴 한데 가는 길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장애등급의 부당함은 발달장애인 영역은 물론 다른 장애계에서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이슈화 삼아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대선공약으로 ‘장애등급 폐지'가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신임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서 장애등급 폐지 공약을 지키기 어렵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논란이 불거졌는가 하면, 최동익 민주당 의원이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장애등급이 폐지되면 중증장애인이 혜택에서 더 소외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이 있다’는 발언을 해 장애계 내에서도 이견이 있음을 드러냈다. 이런 이유가 (장애계) 단체 이기주의나 장애유형별 단체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과정서 불거져 나왔다고 하니 더 씁쓸할 따름이다.

 

폐지냐 대체냐를 놓고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의료적인 진단에만 의존하는 현 체제를 대폭 바꿔야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월 10일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전달체계 연구 결과 발표 토론회’를 개최하고 기존 장애판정기준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ICF’, 즉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ICF)를 제안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김태현 공동연구원은 “활동상의 제한이나 소득, 주변 환경과 같은 사회경제적인 요인들에 대한 고려 없이 의학적 손상의 정도에 따라 매긴 장애등급으로 서비스를 지원하면, 정작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을 배제시키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장애인복지지원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장애인 개별 욕구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진입단계인 ‘장애판정단계’부터 포괄적인 욕구사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를 보편적 건강의 측면으로 해석하고 있는 ICF는 의료뿐만 아니라 건강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체, 개인, 사회환경적 요인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장애등급을 대신할 수 있는 모델로 장애계 내부에서는 호평 받고 있으나,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얼마 전 중증의 자폐성향이 있는 아들 때문에 종일 이 아이에게만 매달려있다 보니 다른 자녀들이 비뚤어지기 시작해 이혼당할 위기까지 내몰렸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애등급마저 하락해 그나마 받고 있던 서비스조차 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며 한숨짓는 아주머니의 사연을 듣고 가슴이 꽉 막힌 적이 있다. 사실은 이 아주머니의 사연이 발달장애인계서는 특별한 이야기 축에도 못 든다는 현실이 더 암울하게 느껴졌다.

 

당장 장애등급이 폐지된다 하더라도 발달장애인 가정에 지금보다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지는 장담 못하겠다. 이 아주머니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가정의 어깨에 짐이 덜어질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장애등급으로 인해 우리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못 받으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하는 풍경은 이제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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