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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본다는것의 진정한 의미 <사랑이 머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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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기간 (사업내용 개발 후 작업 예정)
등록일 2020-08-05 오후 8:05:22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사랑이 머무는 풍경>

 

 

남 경 욱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연구교수

 

 

 

 

 

 

 

 

 

 세상에는 일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타인의 얘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만화, 소설, 영화, 연극, 그리고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치를 통해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 그 중 노력이나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보면 가장 으뜸인 매체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저 두어 시간 애쓰지 않고 두 눈과 귀만 열고 있어도 영화는 상상 혹은 그 이상의 세계를 매우 실감나게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휴양지에 쉬러 온 뉴요커 에이미는 맛사지 숍에서 일하는 시각장애인 버질을 알게 된다.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는 바로 그와 같은 체험의 시간을 제공해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건강한 두 눈으로 이 글을 쓴 필자가 그리고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이 이전에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을, 더 정확히 말해 상상할 필요가 없었을 그런 상황 속으로 안내해 주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 모두 어렸을 적에 경험했었던 일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보는 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를 피해 들어간 건물 안에서 에이미와 버질이 상대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나누고 있다.

 

 장년의 시각장애 남성인 주인공 버질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안마사로 일하며 살고 있다. 유아기에 시력을 잃은 버질에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 있어 이 세상의 모든 느낌과 지식, 그리고 기억은 소리와 냄새 그리고 감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언뜻 양안인 시각에서 보면 시각적 기억을 갖지 못한 버질이 불쌍해 보일 수 있겠으나 착각하지는 말자.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의 수가 하나 적다고 해서 더 불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 비해 재산이 반 밖에 안된다고 해서 반 만큼 행복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버질의 누나가 시력회복 수술을 마친 버질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그러던 버질은 뉴욕에서 휴양차 그 곳을 찾아 온 한 여성과 급속도로 사랑에 빠진다. 누나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살아 온 마을을 떠나 대도시 뉴욕으로 온 버질은 에이미의 도움 가운데 시력회복 수술을 받고 학계와 세상 사람들의 관심 속에 눈을 뜬다. 사랑하는 연인의 노력으로 눈을 뜨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당연히 이 후에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는 버질의 이야기가 이어져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간과한 바로 그것,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점 때문이다.

 

시력을 얻게 된 자에게 이 세상의 모든 형체와 색은 새로운 차원의 정보이다.  버질은 차에 그려진 낙서를 만져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안구를 통해 이미지가 우리 뇌에 들어온다. 여기까지는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이다. 즉, 이미지 정보를 해독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의미를 갖게 되고 우리는 무언가를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지들에 대한 학습을 통해 크기와 색, 거리와 높낮이 등을 이해하는 법을 익혀왔으며 나아가 중요 이미지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하는 법도 훈련해 왔다. 불행히도 버질에게는 이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수술을 통해 수십 년 동안 그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미지 정보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자 버질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의 당초 기대와 달리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양안인도 아니고 시각장애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것은 장기간의 고된 재학습 혹은 재활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었다.

 

다시 시력을 잃게 된 버질은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으로 되돌아왔다.

 

 버질과 에이미는 이런 상황에서 버질이 앞을 보지 못할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들로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후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질은 다시 시력을 잃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이전 감각능력만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고향마을로 되돌아온다.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다행히 버질과 에이미는 그 시간들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장애를 넘어 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막을 내린다.

 

 

버질과 에이미 두 사람이 함께 인생길을 걷기로 한다.

 

 이 영화는 필자로 하여금 보이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요즘 세상은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에게 너무 많이 것이 보여서 피곤한 세상이라는데 대개 공감할 것이다. TV와 컴퓨터, 이제는 스마트폰 화면에 이르기까지 부지불식간에 보도록 강요받는 것들이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넘쳐난다.

 

 과연 우리의 망막을 차지한 그 이미지들은 진정 볼만했던 것들인가?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이미지의 예는 끝도 없이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건강한 시력을 가지고도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경우에 따라, 보아야 하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한다. 건강한 시력이 중요하다는 건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을 올바로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 영화는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다가 시력을 다시 찾았던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인 Shril Jennings(1940~2003)의 실제 경험에 기초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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