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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 느려서 행복한 이야기 <날아라 허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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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기간 (사업내용 개발 후 작업 예정)
등록일 2020-07-16 오전 10:22:30

느려서 행복한 이야기 <날아라 허동구>

 

남경욱

단국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 / 교육학박사

 

 지난 달 큰 선거의 막이 내렸다. 마치 큰 회오리가 지나간 느낌이 든다. 이제는 당선자와 낙선자 모두 통합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승리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쭐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낙선자 편에 섰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으로 일시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2013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진> 물 당번 동구가 반 친구들이 마실 물을 받으러 달려가고 있다.

 잠시 골치 아픈 일들은 잊기로 하자. 지금부터 숨 가쁜 현실과는 무관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IQ 60의 정신지체 아동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정신지체’, 요새는 지적장애라고도 하는 이 단어를 들으면 독자들은 무엇이 생각나는가? 필자에겐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누구나 갈망하면서도 뒤처질까 싶어 선뜻 행하지 못하는 그것, ‘욕심을 버리자’ 혹은 ‘내려놓자’고 말은 하면서도 중간이라도 하려면 ‘쎄빠지게’ 해도 될까 말까한 세상에서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그 모습 ‘느림’. 그것을 우리 앞에 보란 듯이 실천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허동구다.

 

<사진> 동구의 짝 진태는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통닭집 아들인 동구는 일반학교에 통합되어 있는 정신지체 아동이다. 선생님들은 동구가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는 건 없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구는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한 행동을 자주 보여 동구의 짝 진태도 그런 동구와 짝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구는 매일같이 등교를 갈망한다. 반에서 물 당번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받아온 식수를 급우들과 선생님께 따라 주는 게 행복하기만 하다. 체육시간에 학생들이 차례로 운동장을 한 바퀴씩 뛸 때 동구는 두 바퀴를 뛴다. 선생님이 나무라자 동구가 대답한다. “한 바퀴는 짝 주려구요.” 심장이 좋지 않아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짝 진태를 위해 한 바퀴를 더 돈 것이다. 이것이 동구가 사는 방식이다.

 

<사진> 동구는 체육시간에 달릴 수 없는 짝 진태를 위해 한 바퀴를 더 뛴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학급에 주전자가 없어지고 정수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동구는 실의에 빠졌지만 새로이 동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바로 학교 야구선수가 들고 가던 주전자가 그것이다. 동구는 야구부에서 새 희망을 발견한다. 특수학교로 전학을 권유받은 동구의 아버지 역시 동구가 야구부에 들어가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다는 말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때부터 동구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사진> 야구부에서 동구는 활기를 되찾는다. 물 당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작가 왕수펀의 이야기를 각색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거창한 담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들이 아날로그 시대에 살아가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소위 “빵” 터지는 재미, 혹은 “대박!”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소박하고 깨알 같은 재미들이 우리의 눈과 입가에 기분 좋은 잔주름을 만들어주는 작품이다.

 

 더군다나 영화 내내 스크린을 채워주는 햇볕, 툇마루에 누워 잠을 자다 아침햇살에 눈을 뜨는 동구의 모습, 뒷마당 대야에 물을 담아 아버지와 즐기는 목욕 장면 등은 지금처럼 오싹하게 추운 계절에 한 여름의 기분 좋은 나른함을 선사해 준다.

 

 영화는 기분 좋은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 중에도 시즌 내내 홈런 한 방 못 치는 선수가 있는 것을 보면 소시민의 삶 속에서 홈런과 같은 멋진 사건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인데, 영화의 끝을 보면 홈런보다 값진 동구의 번트를 볼 수 있다.

<사진> 동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은  

 

 요새 방송되는 TV프로그램의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행처럼 많이 입에 오르는 영어단어가 있다. 바로 ‘힐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복잡해서 지쳤다면, 그리고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힐링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나보다 덜 똑똑하고 느리고 가진 것도 많지 않은 동구와 동구의 아빠가 당신을 어린 시절로 안내하여 많은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말이다.

 

 정신없었던 선거와 함께 지난 해가 가고 새 해가 밝았다. 아이소리의 독자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를 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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