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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신현기]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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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0-07-16 오전 10:09:43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단국대 특수교육과 신현기

   

안치환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품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고로 우리가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 할 정도로 존경받는 분들은 하나같이 “사람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고 하였

다. 2014년 1월 연초에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병실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십이지장 폐색증과 심장 판막증, 그리고 신장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 아이는 긴급하게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곧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모들은 그 아이에 대한 그 어떠한 처

치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며 수술동의를 하기는커녕 퇴원을 원했다. 병원 당국은 그 아이를 퇴원시킬 수 없었

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병원이 현행 생명윤리 관련법에 의하여 심각한 형사상의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

다. 그래서 병원은 응급환자의 처치 규정을 들어 일단 부모의 동의 없이 수술을 시행한 후 후속적인 조처를

취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아니는 노래를 품지 않아서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는 노래는 무

엇을 의미할까? 오스트리아 태생의 유태인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1923년에

출판된 ‘Ich und Du'(1937년 영역본 I and Thou 출판)에서 ‘만남’이라는 용어의 철학적 의미를 체계화하였다.

그는 이 저서에서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relation)의 중요성을 정립하였다. 그는 이러한 ‘관계’의 상실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사물 즉 물건으로 여기는 비인간화로부터 초래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관계’의 회복, 즉 비인간화의 극복을 ‘만남’의 철학(philosophy of encounter) 또는 ‘대화’의 철학

(philosophy of dialogue)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인격과의 공존적 관계 속에서 실존한다.

따라서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갖는 태도는 「나와 그것 Ich und Es; I and It」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

Ich und Du; I and Thou」의 관계이어야 한다.

만남은 ‘meeting'의 만남과 ’encounter'의 만남이 있다고 한다. 전자의 만남은 왼손과 오른손의 손바닥을 마

주하는 만남이라면 후자의 만남은 전자의 만남처럼 손바닥을 마주한 후 살짝 비켜서서 마주잡거나 깍지를

끼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만남을 통해서는 상대방의 전면(前面)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후자의

만남을 통해서는 내가 옆으로, 상대방이 옆으로 살짝 비켜 설 수 있었기에 상대방의 모든 면 즉, 전면(全面)

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014년은 120년 만에 오는 갑오년(甲午年)) 청마의 해라고 한다. 그래서 너도나도 앞을 향해 달리자고 한다.

하지만 앞이 어디인가 구분하지 않고 달리면 탈이 난다. 오늘을 잘 살려면 지나간 오늘(과거)과 돌아올 오늘

(미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신영복선생님은 이상과 현실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상은

현실을 향하여, 현실은 이상을 향하여 다가가야 한다고 하였다.

이 땅의 장애인들이 꽃보다 아름답기 위해서는 우리의 장애인 교육과 복지의 이상과 현실이 끊임없이 대화

해야 한다. 서로를 향해 다가가야 한다.

 

법구경(法句經)의 게송(偈頌) 25 『쭐라빤타까 이야기』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 할 이유를 함께 나누

고자 한다.

 

라자가하에 사는 한 부유한 은행가에게는 손자 둘이 있었다. 큰 손자의 이름은 마하빤타까였고, 막내손자의

이름은 쭐라빤타까였다. 큰 손자 마하빤타까는 할아버지를 따라 수도원에 가서 부처님의 설법듣는 것을 매

우 즐겨했다.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가정을 떠나 빅쿠(비구)가 되었다. 비구가 된 마하빤타까는

열심히 수행했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한 결과 깨달음을 성취하여 아라한이 되었

다. 동생인 쭐라빤타까는 매우 둔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생에 과거불(過去佛)인 까사빠 부처님의 승가에 출

가한 비구였는데, 어떤 둔한 비구를 가리켜 바보라고 자주 놀려대곤 했기 때문에 그 과보로 현생에 둔한 사

람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이 쭐라빤타까도 형이 출가한 것을 보고 비구 생활을 동경하여 마침내 가정을 떠나

비구가 되었다. 그러나 머리가 둔했던 탓으로 비구가 된 지 넉 달이 되도록 부처님의 게송한 편도 제대로 외

우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실망하여 큰 고뇌에 빠졌다. 그런 동생을 본 마하빤타까는 동생이 비구로서 수행

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존경을 받을 수도 없으리라 판단하여, 차라리 가정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즈음 당시 유명한 의사였던 지와까가 부처님과 비구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

하여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이 행사에는 마하빤타까가 여러 가지 진행 실무를 맡아 보았는데, 그는 신자들

의 공양을 받을 비구 명단에서 동생인 쭐라빤타까를 제외시켜 버렸다. 그는 동생이 신자들의 공양을 받을 만

한 수행력과 덕행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형의 행동은 쭐라빤타까에게는 매우 심각한 타격이었다.

그는 분한 마음에 이제 비구 생활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그들 두 비구

형제의 사정을 살펴 아시고 쭐라빤타까를 부르시었다. 부처님은 쭐라빤타까를 마루에 앉게 하신 다음 그에

게 깨끗하고 부드러운 수건을 주시면서 이렇게 이르시었다.

“쭐라빤타까야, 너는 지금부터 동쪽으로 앉아서 이 수건으로 마루를 닦아라. 그러면서 수건을 밀고 당길 적

마다 ‘라조하라낭(더러운 것을 닦아 낸다)’이라고 외도록 하여라.” 이렇게 이르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른 비

구들과 함께 공양을 받으시기 위해 지와까의 집으로 가시었다. 쭐라빤타까는 부처님의 배려에 용기백배하여

열심히 마루를 닦기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마루를 문지르면서 라조하라낭을 외웠다. 그러다 얼마 후에 보니

마루의 때가 묻어 수건이 뻣뻣해져 있는 것이었다. 그 같은 수건의 변화는 그에게,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변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며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이때 부처

님께서는 공양을 받으시면서 천안(天眼)으로 이 같은 사실을 살펴 아시었다. 부처님께서는 지와까의 집에 계

시면서 광명을 놓아 쭐라빤타까 앞에 모습을 나타내시어 이렇게 설법하시었다.

“쭐라빤타까여, 비단 수건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때가 끼느니라. 그 때란 무엇인가. 욕망,

갈망, 탐심, 증오, 악심, 진심(성내는 마음), 무지, 어두움이 그것이니라. 그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四聖諦]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되고, 그러한 무지의 때가 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도 때

가 낀 걸레처럼 뻣뻣해지며 사악해지는 것이니라. 쭐라빤타까여, 이러한 때를 완전히 제거하면 수행의 목표

는 달성되나니, 그때 그는 아라한이 되느니라.” 쭐라빤타까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 용기를 얻어 더욱

현상 관찰에 마음을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을 성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둔한 상

태가 사라져 아주 지혜롭고 분석력도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

한편 지와까의 집에서는 공양이 끝나고 공덕수를 땅에 부으려 하는데 부처님께서 그것을 제지하시었다. 그

리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지금 수도원에 누가 남아 있는지 믈으셨다. 그러자 아무도 없다는 대답이었

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이르시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니라. 지금 수도원에 비구 한 사람이 있을테니 가서 데리고 오도록 하여라.”

그래서 심부름꾼 한 사람이 수도원에 파견되었다. 심부름꾼은 돌아와서 사뢰었다.

“지금 수도원에는 일천 명이나 되는 비구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었다.

“그러면 다시 가서 ‘쭐라빤타까 비구가 누구신가요?’하고 물어 보아라. 그래서 쭐라빤타까를 찾아내어 이리

로 데리고 오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심부름꾼은 다시 수도원으로 갔다. 그는 부처님이 이르신 대로 일천 명

의 비구들에게 “쭐라빤타까 비구가 누구신지요? 모시러 왔습니다.”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일천 명의 비구들

이 일제히 “내가 쭐라빤타까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크게 당황한 그는 다시 부처님께 돌아와 이같

은 사실을 사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그를 수도원으로 보내시면서, 이번에는 대답하는 쭐라빤타

까 일천 명 중에서 제일 먼저 대답하는 사람의 까사(가사)를 꼭 붙잡아 그를 데리고 오라고 이르시었다. 그가

쭐라빤타까의 가사자락을 붙잡는 순간 다른 비구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리하여 심부름꾼은 쭐라빤타까와 함께 부처님 앞에 나타났고,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공양공덕을 찬탄하는

설법을 하라고 이르시었다.

그러자 그는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던 법문을 다시 되풀이함으로써 당당히 설법을 마쳤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비구들이 법당에 모여서 여러 가지 토론을 하다가 쭐라빤타까 이야기가 나왔다. 한 비구가 말했

다.

“형제들, 쭐라빤타까 비구는 비구가 된 지 넉 달이 되도록 게송 한 편도 제대로 외지 못했었소. 그런데 그 자

신을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니, 그

는 이제 더 이상 바보가 아닌 것이오.”

이때 부처님께서 들어오시며 물으시었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었는가?”

비구들이 사실대로 사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신의 모든 힘과 의지력을 다해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실천 노력하면 목표 달성에 실

패하지 않느니라. 그런 비구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으뜸가는 지혜의 보고(寶庫)로 만드느니라.” 그

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으뜸가는 노력과 주의력으로 마음 집중을 수행하여 잘 억제하

고 단련된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는다면 어떤 홍수도 그를 휩쓸어 가지 못하리.

(법구경 거혜 해제, 2003, 130-134. 샘이깊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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